마음을 깨끗이 가져야 복이 이르나니라

2025. 3. 17. 09:20대순회보


교무부 이광주

“마음을 깨끗이 가져야 복이 이르나니 남의 것을 탐내는 자는 도적의 기운이 따라들어 복을 이루지 못하나니라” 하셨도다.

(교법 1장 21절)

위의 성구는 상제님께서 종도들에게 복(福)이 이르는 삶을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가르침을 주신 구절이다. 마음을 깨끗이 가져야 복이 이른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복을 받기 위한 전제 조건이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고, 남의 것을 탐하는 마음을 가지면 복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에서 마음과 복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마음을 깨끗이 가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 도인들이 어떻게 마음을 닦아야 복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대순진리회에서 수도란 마음과 함께 몸을 닦아나가는 것이지만, 도(道)를 닦는 데 있어서 마음이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마음이 일신(一身)을 주관하며 전체를 통솔하고 이용하기 때문에01 수도에 있어서 보다 근본적인 것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상제님께서 머리가 깎여 출입을 삼가던 박공우를 찾으시고 “나는 오직 마음을 볼 뿐이로다. 머리와 무슨 상관하리오.”02라고 말씀하신 까닭도 여기에 있다. 『대순진리회요람』의 「훈회」에는 이 마음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데, “그 마음에는 양심(良心), 사심(私心)의 두 가지가 있다. 양심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요, 사심은 물욕(物慾)에 의하여 발동하는 욕심(慾心)이다.”라고 하는 내용이 그것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하늘에서 부여한 천성 그대로의 본심인 ‘양심’과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에서 비롯된 ‘사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제님께서 ‘마음을 깨끗이 가지라’고 하신 말씀은 물욕에 의해 발동하는 욕심인 사심을 버리고 인간의 본심인 양심을 회복하라는 의미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인성의 본질이 양심이므로 수도의 목적 또한 사심을 버리고 진실하고 순결한 본연의 양심을 회복하는 데 있는 것이다. 여기서 양심(良心)이란 ‘본래 타고난 착하고 어진 마음’, 또는 ‘자기 행위에 대하여 시비와 선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의식’을 뜻한다.03 이 말은 동양의 유학적 전통에서 『맹자』 「고자상(告子上)」에서 최초로 언급되었다. 맹자(孟子)는 인의지심(仁義之心)을 양심이라고 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선천적으로 타고난 선한 본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물욕에 의해 그 마음을 잃어버린 것일 뿐이라며 양심의 회복을 역설하고, 이를 자신이 주창한 성선설(性善說)의 근거로 삼았다.04 이와 관련해 주자(朱子)는 성현의 수많은 말씀도 사람들이 자신의 본심을 잃지 않게 하려는 데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05 이렇게 유학에서 양심은 하늘에서 부여한 인간의 선한 마음으로, 인륜을 바르게 행하고 사람의 도리를 실천하기 위한 근간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양심 개념과도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대순진리회에서 인간의 양심 회복을 위해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무자기(無自欺)이다. 이것은 도주님께서 도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도리를 잘 실천할 수 있도록 마련해 놓으신 훈회와 수칙 및 목적에 잘 드러나 있다. 훈회 1의 “마음을 속이지 말라”와 수칙 3의 “무자기는 도인(道人)의 옥조(玉條)니, 양심을 속임과 혹세무민하는 언행과 비리괴려를 엄금함.”, 그리고 목적의 “무자기”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무자기는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고 거짓된 언행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의 ‘마음’이란 선천적으로 타고난 양심을 의미한다. 도인의 옥조(玉條: 매우 귀하고 중요한 조목이나 규칙)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무자기는 도인들이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요건이자 근본이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 본래의 청정한 본질인 양심을 온전히 회복하고 발휘하는 것[無自欺]을 수도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무자기는 상생의 도(道)를 실천하기 위한 전제 조건임과 동시에 수도를 통해 도달해야 할 목적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무자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해 나가야 한다. 상제님께서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06라고 하셨다. 즉, 사사롭고 마음이 바르지 못한 데[私曲]서 비롯한 거짓은 자신의 양심과 천지신명, 더 나아가 하늘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죄가 된다. 하지만 정직과 진실은 인간의 본심인 양심에서 비롯한 것으로, 자기는 물론 타인도 속이지 않고 윤리와 도덕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만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도전님께서는 “사(私)는 인심이요 공(公)은 도심(道心)이니, 도심이 지극하면 사심(私心)은 일어나지 못하느니라.”07라고 하셨으니, 지극한 도심으로 사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무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도인들이 사사로운 마음, 일신의 영리와 영달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상제님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대인대의(大仁大義)를 실천하고자 하는 도심을 지극히 하면 사심이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일상 자신을 반성하며 눈앞의 이익이나 당치 않는 허욕(虛慾)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상제님께서 강조하신 정심(正心), 진심(眞心), 일심(一心)을 통해 도심을 확충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도인들이 무자기를 바탕으로 수도하여 올바른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면 자신의 본심인 양심을 회복함으로써 마음이 깨끗해질 수 있다. 상제님께서 마음의 청정(淸淨) 유무에 따라 복을 이루게 된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다음의 성구를 통해 그 의미를 이해해 볼 수 있다.

天用地用人用統在於心

하늘이 쓰고 땅이 쓰고 사람이 쓰는 것이 모두 마음에 있다.

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

마음이란 것은 귀신의 추기(樞機: 지도리)요, 문호요, 도로이다.

開閉樞機出入門戶往來道路神

추기를 개폐하고, 문호를 출입하며, 도로를 왕래하는 신은

或有善或有惡

혹은 선한 것도 있고 혹은 악한 것도 있으니,

善者師之惡者改之

선한 것은 본받고 악한 것은 고쳐야 한다.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

내 마음의 추기와 문호와 도로는 천지보다 크다. 08

위의 구절은 상제님께서 1907년 6월 어느 날, 신경원(辛京元)에게 보고 난 후 불사르라고 하시며 친히 작성해주신 글귀의 일부이다. 이 글에서 마음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쓰는 것인데, 이 마음은 사람을 비롯해 천지의 중심이 되는 것으로서,09 인간과 신이 합덕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그 신들 중에서 선(善)한 것은 본받고 악(惡)한 것은 그 원인이 된 마음을 돌이켜 고쳐나가면 나의 마음이 천지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마음을 깨끗하게 가지면 복을 이루고, 남의 것을 탐하는 마음을 가지면 도적의 기운이 따라 들어 복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셨다. 여기서 내 마음에 선신(善神)을 불러들이느냐 악신(惡神)을 불러들이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물론 천지신명이 운수자리를 찾아서 각 사람과 각 가정을 드나들며 기국을 시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음에 분란을 일으키는 때도 있다.10 어떤 경우라도 항상 상제님의 말씀에 입각해 나의 심신을 연마하며 자신의 도리를 바르게 실천해 나가면 마음이 깨끗하게 된다. 그러면 맑고 밝은 신명과 합덕하고 조화를 이루어 천지공정(天地公庭)에 동참함으로써 후천의 영원한 복록을 쌓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사사로운 욕심을 가지면 그에 상응하는 신(神)이 응하게 되는데,11 이때 그 마음을 반성하고 고치지 않아 사리사욕에 사로잡히면 자신은 물론 신명과 하늘을 속임으로써 죄를 짓게 되고 복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12

이처럼 복을 이루고 못 이루고의 기준은 자신의 마음을 청정(淸淨)하게 가지느냐 부정(不淨)하게 가지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먼저 복(福)은 삶에서 누리는 만족할 만한 행운이나 행복이란 뜻이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행복한 삶을 말할 때 “오복을 갖추었다”라고 말하곤 하였다. 오복(五福)은 『서경(書經)』 「홍범(洪範)」편에서 인생의 바람직한 조건으로 제시한 수(壽: 장수)ㆍ부(富: 부유)ㆍ강녕(康寧: 건강)ㆍ유호덕(攸好德: 덕을 베풀기 좋아함)ㆍ고종명(考終命: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음)의 5가지를 말한다.13 도주님 당시에 사용했던 「운합주(運合呪)」에는 수(壽)ㆍ부(富)ㆍ귀(貴: 지위가 높음)ㆍ유호덕ㆍ다남자(多男子: 아들이 많음)가 오복지정(五福之精)으로 되어있다.14 이러한 복들은 전부는 아닐지라도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대부분 소망하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복’은 현세적인 측면도 없지 않지만, 다가올 후천선경에서 누리게 될 영화와 복록이란 측면에 좀 더 무게 중심이 실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상제님께서 일심(一心)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 없이 복록을 베풀어주겠다고 하셨으니,15 진실한 마음으로 바르게 수도하여 일심이 되면 현세에서도 자신의 앞길을 막던 척과 겁액이 풀어져 기대하는 바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도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현세에서의 안락과 영화가 아니라 대순진리에 입각한 수도를 통해 대운 대통을 받아 후천에서 영원한 선경(仙境)의 낙을 누리는 것이다.16 이를 위해서는 수도의 여러 조건을 갖춰서 도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데, 마음을 깨끗이 가지는 것이 바로 그에 해당하는 일임을 다음의 「훈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무자기가 되어 완전한 도인이 되면 욕심과 사심이 없어진다. 원래의 본성, 천성(天性), 양심, 원래의 착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래야만 도통 받을 만한 그릇이 만들어지고 갖추어지는 것이다. 그 그릇을 만드는 것이 수도이다. 지금은 그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유리알같이 깨끗해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통해진다.

「도전님 훈시」 (1989. 02. 12)

이 말씀처럼 우리가 마음을 깨끗하게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인륜을 바르게 행하고 해원상생의 진리를 실천해 나가야만 한다. 이러한 수도를 통해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고 진실한 도인이 되면 나의 마음이 유리알처럼 깨끗해져서 그에 합당한 신명의 호위를 받고, 인간과 신명이 상합(相合)하고 상통(相通)하여 수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상제님께서 어느 날 종도들에게 “동학가사에 ‘많고 많은 저 사람에 어떤 사람 저러하고 어떤 사람 그러한가’와 같이 탄식줄이 저절로 나오리라.”17라고 말씀하신 것도 도인들이 자기 마음의 등불을 밝히는 수도와 적선적덕(積善積德)을 게을리해서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인들은 자신에 대한 성찰과 인간 완성을 위한 수도에 전념하여 진실하고 순결한 마음,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 기대하는 바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지극한 정성과 공경과 믿음을 다해야 할 것이다.


01 『대순진리회요람』, p.16 참고.

02 교법 2장 10절.

03 단국대학교 동양연구소,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 11권 (서울: 단국대학교출판부, 2007), p.711.

04 『孟子』, 「告子上」, “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其所以放其良心者, 亦猶斧斤之於木也. 旦旦而伐之, 可以爲美乎.”; 유교사전편찬위원회, 『儒敎大事典』 (서울: 박영사, 1990), pp.896-897, p.902 참고.

05 『朱子語類』12卷, 「學六ㆍ持守」, “聖賢千言萬語, 只要人不失其本心.”

06 교법 3장 24절 참고.

07 『대순지침』, p.93.

08 행록 3장 44절.

09 “天地之中央心也 故東西南北身依於心(천지의 중앙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동서남북 사방과 몸은 마음에 의지한다.)”(교운 1장 66절)

10 교법 1장 42절 참고.

11 “마음이 몸의 주로서 제병 제악(諸病諸惡)을 낚아들이는 것이다.”(『대순지침』, p.48)

12 “과오를 경계하기 위하여 예부터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自欺自棄)이요, 마음을 속이는 것은 신을 속임이다(心欺神棄).’고 하였으니 신을 속이는 것은 곧 하늘을 속임이 되는 것이니 어느 곳에 용납되겠는가 깊이 생각하라.”(『대순지침』, p.42.)

13 「오복(五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4 「運合呪」, “壽富貴攸好德多男子五福之精.”(교운 2장 42절)

15 교법 2장 4절.

16 “나를 좇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권지 1장 11절)

17 교법 2장 9절; 동학의 『용담유사』 「흥비가」 중 “명명한 이운수는 다같이 밝지마는, 어떤사람 저러하고 어떤사람 이러한지, 이리촌탁 저리촌탁 각각명운 분명하다.”에 나오는 내용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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